체르노빌원전사고3 체르노빌 원전 사고_완료되지 못한 수습 1. 서방과 협력을 원하는 소련 광부들이 원자로 아래를 파고 있을 때 한스블릭은 소련당국과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IAEA를 대신해서 말씀드리면 비극적 사고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생명의 손실과 발생한 그 피해. 사고 후 분석을 위해 빈으로 가기로 소련 당국과 합의했다. 전 세계에서 온 500명의 기자 앞에서 국제회의가 빈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곳에서 소련은 재앙에 대한 그들의 모든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소련 정부는 서방과 협력하는 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개방 시대로의 역사적인 변화. 쓰라리게 필요했던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승리. 체르노빌에서 불은 이제 억제됐으나 수많은 고준위 방사성 파편들이 떨어져 방사성 원소들을 노출했다. 극도로 긴급하게 부서진 구조를 덮고 그 지역을 정화해야 .. 2022. 11. 20. 체르노빌 원전 사고_목숨을 건 수습 작전 1. 비처럼 쏟아지는 방사능 폭발 후 1주일, 대 이주가 지속된다(체르노빌을 떠나는 길 - 5월 2일). 발전소에서 7km 지역의 체르노빌시 거주자들이 이주하게 된다. 발전소 반경 30킬로 내의 모든 마을 사람들 또한 이주한다. 130,000명이 이주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위험할 정도로 이미 오염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이르는 300,000헥타르에 이르는 지역이 갑자기 이주하여 세계로부터 격리됐다. 보이지 않는 적이 며칠 동안 한 세계를 싹 쓸었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나빴다. 적을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방사선은 어디에나 있다. 우린 그걸 통과하고 영향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끔은 몇 년 후, 그것은 끔찍하다. 한편 방사성 구름은 유럽 위를 계속 떠다녔다. 바바리아와 이탈리.. 2022. 11. 20. 체르노빌 원전 사고_원인과 위치 1. 파괴된 원자로 1986년 4월 25일 금요일은 우크라이나의 도시 프리피야트의 43,000명의 거주자와 전 세계에 영원히 새겨질 날이었다. 그 시로부터 3km 떨어진,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일하러 가는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그날 저녁 4호기의 176명 직원이 원자로의 자체 연료공급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었다. 오전 12시 54분, 테스트를 중지했다. 오전 1시 23분,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실험이 시작됐다. 원자로 중심부에서 연속적인 폭음이 났고, 프리피야트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동안 발전소 밑바닥은 떨리기 시작했다. 1200톤 원자로의 뚜껑이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방사성을 띠며 증발한 기체의 초강력 흐름이 우라늄과 흑연을 발전소 주위로 수백미터 넘게 퍼뜨렸다. 떡 벌어진 구멍에서.. 2022. 11. 19.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