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39 체르노빌 원전 사고_원인과 위치 1. 파괴된 원자로 1986년 4월 25일 금요일은 우크라이나의 도시 프리피야트의 43,000명의 거주자와 전 세계에 영원히 새겨질 날이었다. 그 시로부터 3km 떨어진, 매일 수천 명의 사람이 일하러 가는 블라디미르 리치 레닌 핵발전소. 그날 저녁 4호기의 176명 직원이 원자로의 자체 연료공급 시스템을 시험하고 있었다. 오전 12시 54분, 테스트를 중지했다. 오전 1시 23분,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실험이 시작됐다. 원자로 중심부에서 연속적인 폭음이 났고, 프리피야트가 평화롭게 잠들어 있는 동안 발전소 밑바닥은 떨리기 시작했다. 1200톤 원자로의 뚜껑이 갑자기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방사성을 띠며 증발한 기체의 초강력 흐름이 우라늄과 흑연을 발전소 주위로 수백미터 넘게 퍼뜨렸다. 떡 벌어진 구멍에서.. 2022. 11. 19. 1차 세계대전_독일의 끔찍한 살육 1. 독일과 맞서는 프랑스 이 상황에서 프랑스 식민지 군대가 나라를 구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 부대들은 프랑스 남부에 상륙한 뒤 북쪽으로 진군했다. 이들은 무거운 군화 대신 맨발로 행군했다. 파리 전역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방위군이 조직됐고 1914년 9월 2일, 프랑스 조종사 2명이 적진 정찰 비행에서 돌아왔다. "독일군이 방향을 바꾸고 있습니다!" 파리로 진군하던 독일군은 방향을 틀어 프랑스군을 포위하려 했다. 프랑스군과 영국군이 마른강에서 자신들을 공격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파리 방위군 사령관 갈리에니 장군은 마른강으로 6천 명의 병사를 긴급히 이동시켰다. 그들은 파리의 택시로 이동했다. 100만 프랑스군 중 병력은 극히 일부만 이동됐다.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프르 장군은 전선으로 가기 .. 2022. 11. 19. 1차 세계대전_독일의 프랑스 침공 1. 러시아를 상대하는 독일 1933년 8월 27일, 동프로이센.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아돌프 히틀러와 헤르멘 괴링이 타넨베르크 전투 기념비 앞에서 육군 원수 힌덴부르크에게 경의를 표한다. 히틀러는 선언했다. "타넨베르크는 상징이다. 1914년 바로 이곳에서 독일의 운명이 결정됐다" 힌덴부르크에게 있어 타넨베르크 전투는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타넨베르크 전투, 1차 세계대전의 변곡점이었다. 수백만 명의 청년들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국가원수들은 이 전쟁이 짧게 끝날 것이라 여러 차례 약속했다. 하지만 전쟁은 교착상태에 이르고 공포는 점점 극대화됐다. 그 공포는 프랑스를 점령했다. 독일군이 파리로 진군해오자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이 은행에 몰려들었다.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 상파뉴 지방의 난민 수천.. 2022. 11. 19. 이전 1 ···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