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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이라고 불리는 이유(517) 1. 대통령 사망으로 생겨난 새로운 세력 1979년 10·26 사태,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무너진다. 곧이어 전국에 선포된 비상 계엄령.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 세력은 혼란한 정국을 틈타 1212사태를 일으켜 군사권과 정치 실권을 장악했다. 10월 26일,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당한 전대미문의 사건. 합동수사본부가 구성됐으면 중앙정보부에서 장악해야 하는데 얄궃게도 중앙정보부장이 쏴 죽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합수부장은 군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이 맡게 되었다. 육군 소장이 얘가 일약 사태조사에 사건처리에 핵심이 된 것이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되었다. 법률상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이 되어야 했기 때문에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2022. 11. 20.
체르노빌 원전 사고_완료되지 못한 수습 1. 서방과 협력을 원하는 소련 광부들이 원자로 아래를 파고 있을 때 한스블릭은 소련당국과 모스크바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IAEA를 대신해서 말씀드리면 비극적 사고에 깊은 유감을 표합니다. 생명의 손실과 발생한 그 피해. 사고 후 분석을 위해 빈으로 가기로 소련 당국과 합의했다. 전 세계에서 온 500명의 기자 앞에서 국제회의가 빈에서 열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곳에서 소련은 재앙에 대한 그들의 모든 자료를 공유하기로 했다. 소련 정부는 서방과 협력하는 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개방 시대로의 역사적인 변화. 쓰라리게 필요했던 고르바초프의 정치적 승리. 체르노빌에서 불은 이제 억제됐으나 수많은 고준위 방사성 파편들이 떨어져 방사성 원소들을 노출했다. 극도로 긴급하게 부서진 구조를 덮고 그 지역을 정화해야 .. 2022. 11. 20.
체르노빌 원전 사고_목숨을 건 수습 작전 1. 비처럼 쏟아지는 방사능 폭발 후 1주일, 대 이주가 지속된다(체르노빌을 떠나는 길 - 5월 2일). 발전소에서 7km 지역의 체르노빌시 거주자들이 이주하게 된다. 발전소 반경 30킬로 내의 모든 마을 사람들 또한 이주한다. 130,000명이 이주했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위험할 정도로 이미 오염되었다.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에 이르는 300,000헥타르에 이르는 지역이 갑자기 이주하여 세계로부터 격리됐다. 보이지 않는 적이 며칠 동안 한 세계를 싹 쓸었다. 어쩌면 전쟁보다 더 나빴다. 적을 볼 수 없었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방사선은 어디에나 있다. 우린 그걸 통과하고 영향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끔은 몇 년 후, 그것은 끔찍하다. 한편 방사성 구름은 유럽 위를 계속 떠다녔다. 바바리아와 이탈리.. 2022. 11. 20.
체르노빌 원전 사고_사고 후 1주일 1. 늦게 시작된 수습 폭발 30시간 후, 4월 27일. 첫 보안 조치가 실시되었다. 1000대가 넘는 버스들이 도착했다. 오후 2시, 도시에 있던 군인들이 완전히 대피해야 한다고 알렸다. 어떠한 패닉도 피하기 위해 당국은 상황의 심각성을 감췄다. 소지품을 싸서 그들 집 앞에 모이도록 했다. 단 한 벌의 따뜻한 옷도 가져갈 수 없었다. (모두 오염되어 가져가면 안 됨). 사람들은 소유했던 모든 것을 두고 떠나야 했다. 그들의 삶을 모두 두고 떠났고, 그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적을 믿지 않았으나 설명해 줄 시간이 없었다. 4월 27일 17시, 43000명의 사람을 대피시켰다. 버스가 유럽의 첫 핵 난민들을 수송했다. 그들은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어 혈액 구성이 바뀔 수 있고,.. 2022.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