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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거침없는 독일의 진격_2차 세계대전(4)

by 휴이_ 2022. 12.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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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비없는 공격을 시작한 독일

 

1940년 5월 9일, 독일에서 멀지 않은 프랑스 아르덴. 그곳에선 예쁜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있었다. 평화를 기원하는 새 노래를 배우던 아이들. 그 수업은 아이들의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1940년 5월 10일 새벽 5시 35분. 독일은 무자비한 공격을 시작했다.

독일 공수부대는 네덜란드에 낙하했다. 이 부대는 300만 침략군 중 최선봉 전초부대였다. 벨기에로 진군한 독일군. 이는 히틀러의 미끼였다. 독일은 1914년에 했던 것처럼 벨기에를 통해 프랑스를 공격하는 척했다. 연합군 사령관, 프랑스 가믈랭 장군은 자신만만했다. 대비는 모두 끝난 상태였다. 그는 전투가 없을 때 만반의 준비를 해놓았다.

가믈랭은 프랑스 최정예 부대인 기동 사단과 영국의 원정군 전체에게 벨기에를 향해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때 히틀러는 사령부에서 흐뭇해하고 있었다. 연합군이 미끼를 물었다. 그는 기쁨에 겨워 울 것 같다고 외쳤다. 

히틀러는 공군 총사령관 괴링에게 프랑스를 폭격하지 말고 벨기에 영토 깊숙이 진군하게 두라고 말했다. 연합군이 벨기에의 독일군에 신경 쓰는 사이, 진짜 침략군이 아르덴 숲을 통과해 공격하는 작전이었다.

프랑스 최고 사령부는 어떤 탱크도 숲이 우거진 언덕을 통과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독일군은 이 단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참히 깨버렸다. 특수 훈련을 받은 독일 공수부대는 벨기에를 침공하여 양동 작전을 이어 나갔다.

1940년 5월 11일 동틀 녘, 독일군은 벨기에 영토로 낙하했다. 목표는 벨기에 방어 시스템의 주축인 알베르 운하의 에방 에말 요새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침투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곳이었다.

두려움을 모르는 한 독일 병사는 폭약을 잔뜩 들고 성벽 위의 탑으로 올라갔다. 마침내 에방 에말 요새를 격파한 독일군. 독일군의 불패 신화가 막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벨기에 피란민들은 남쪽으로 향하는 가축 수송 열차에 올랐다. 파리의 적십자사에 인파가 점점 몰렸고, 벨기에 피난민들은 남쪽으로 향하는 가축 수송 열차에 태워졌다.

전쟁은 점점 현실이 됐다.

1940년 5월 11일, 독일군이 리에주에 들어서자 공포는 더욱 퍼졌다. 시민들은 이 힘에 굴복하거나,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독일군은 공중에서 주요 교차로와 비행장, 정유소, 기름 저장고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북부, 동부 프랑스 도시들이 폭격당했다. 무고한 희생자는 점점 늘어갔다. 그제야 프랑스는 현대 전쟁의 현실과 대면했다. 네덜란드에서는 노트르담 항구가 불에 탔다. 바르샤바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기습 폭격 작전에 당한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번엔 이미 항복한 도시가 폭격 됐다는 점이었다.

 

2. 거침없이 진격하는 독일군

한편 런던에서는 수상이 된 처칠이 첫 취임 연설에서 어떤 상황에서든 싸움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러나 프랑스의 상황은 암울했다. 아르덴을 휩쓴 독일군은 프랑스 방어선을 향해 계속 진군했다. 단 3일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독일군은 양면 협공 작전으로 벨기에에 집결한 연합군의 숨통을 조였다. 독일 보병들은 외계에서 온 전사들처럼 프랑스군을 휩쓸며 거침없이 전진했다.

결국 독일군은 1940년 5월 13일, 하루 만에 세당을 점령했다. 아르덴의 대문 격이었던 세당. 하지만 독일군의 진짜 장애물은 뫼즈강이었다. 5월 13일 밤, 독일군은 다리를 만들었고 프랑스군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격했다.

독일군은 거침없는 기세로 프랑스 포병들을 제압했고,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의 독려를 받은 공병들은 마침내 다리를 완성했다. 탱크가 앞장서고 보병이 뒤따르고, 항공기가 뒤에서 받쳐주고. 독일군의 무시무시한 화력에 놀란 프랑스 총리 폴 레노는 처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린 졌습니다. 전투에 패했어요."

프랑스 장군들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연합군이 벨기에에서 발이 묶여 독일군의 진격을 막을 방도가 없었다.

파리 당국자들은 날로 늘어가는 피란민들과 씨름했다. 벨기에와 프랑스 북부의 피란민들이 파리로 몰려들었다. 학교, 병원, 막사는 사람들로 넘쳤다. 프랑스 최고 사령부는 그제야 독일군은 해안으로 향하고 있고, 연합군은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곧바로 반격 명령이 내려졌다. 드골 대령에게는 탱크 여단을 이끌고 전공을 세울 기회가 주어졌다.

프랑스 탱크 여단의 탱크는 독일 기갑 부대의 탱크보다 수도 많고 성능도 좋았다. 하지만 공군의 엄호가 없는 프랑스 탱크는 독일 공군의 손쉬운 사냥감이 됐다. 프랑스 병사들은 왜 공군이 그들을 보호하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준비도 부족하고 전투기 수도 훨씬 적었지만, 프랑스 파일럿들은 독일 공군에 대항해 용감하게 싸웠다. 그리고 수십 명의 독일 파일럿들이 포로가 됐다.

프랑스군은 독일의 진격을 막기 위해 용감히 싸웠으나, 독일군은 프랑스군의 저항을 뚫었다. 마침내 독일군이 영국 해협에 다다랐다. 히틀러의 작전이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영국에서 온 원정 부대와 벨기에군 그리고 프랑스군은 독일군에 포위됐다.

1940년 5월 28일, 벨기에 왕은 군대를 이끌고 독일군에 찾아갔다. 그는 결국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해안 쪽으로 퇴각한 영국 원정군. 이로써 연합군은 더 버틸 힘을 잃었다. 파리에서 프랑스 총리 폴 레노는 가믈랭을 해고하고 새로운 구세주를 찾아냈다. 바로 1918년 연합군의 승리를 이끌었던 72세, 베이강 장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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