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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나치의 공격과 함정_2차 세계대전(3)

by 휴이_ 2022.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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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시와 유대인을 핍박하기 시작한 나치

나치는 집시 수용소를 만들고 집시들을 억류했다. 나치의 눈에 집시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이어서 집시 출신 여인들은 강제로 불임 수술받았다. 자식을 낳을 자격이 없기 때문이었다. 집시 사냥을 선언한 나치. 그 후 수천만 명의 집시가 집단 수용소에 갇혔다. 하지만 사냥은 집시에서 끝나지 않았다. 나치는 곧, 유대인 사냥을 시작했다.

유대인들의 시련이 시작됐다. 나치가 잡아들인 폴란드 유대인 300만 명. 아직 히틀러는 이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이 나치의 의도대로 흘러간다면 유대인을 동유럽으로 추방하거나 마다가스카르로 보낼 생각이었다. 히틀러와 그의 추종자들은 전쟁의 결과가 확실하지 않을 때만 광란의 학살을 벌일 작정이었다. 이는 히틀러가 생각한 최후의 해결책이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노란 별 모양의 표지를 달고 강제 거주지로 돌아갔다.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도 있었다. 유대인들은 언젠간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확신을 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극심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리며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대학살로 이어질 것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유대인 거주 지역. 출입 금지."

히틀러가 도착한 바르샤바. 그곳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다.

1939년 11월 8일, 피해자들을 향해 경례한 히틀러는 이전에 비해 독일군과 독일 국민의 지지를 훨씬 많이 받았다. 그는 선언했다. "결정은 번복되지 않는다. 때가 되면 프랑스를 공격한다. 나는 승리할 것이다. 죽을 각오로 도전하겠다."

하지만 히틀러는 서유럽 공격에 대한 확신이 없어 "전쟁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도 했다. 결국 그는 공격을 연기하고 알프스산맥에 있는 별장으로 돌아가 정부인 에바 브라운과 시간을 보냈다. 

전쟁은 색다른 국면에 접어들었다. 독일군은 교착전, 즉 주저앉은 전쟁이라 했고 영국군은 가짜 전쟁이라 불렀다. 프랑스군은 웃기는 전쟁이라고 했다. 길고 이상한 기다림은 특히 여성들에게 가혹했다. 여성들은 전쟁의 괴로움뿐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도 떠안았다.

병사들은 1차 대전 때처럼 참호를 파 피신하기 좋은 환경을 꾸미려 했다. 그때의 기온, 영하 30도였다. 1939년에서 1940년 사이의 겨울은 20세기 최악의 혹한으로 기록된다. 이때뿐 아니라 2차 세계대전이 이어지는 동안 겨울은 지독하게 추웠다.

 

2. 나치에 대항하는 연합군

1940년, 연합군 총사령관 가믈랭 장군은 독일군이 지난 전쟁처럼 벨기에를 공격하고 넓은 벌판을 지나 파리로 향할 것이라 예상했다. 이에 가믈랭은 벨기에에서 독일군을 대항할 작전을 세웠다. 프랑스의 탱크 장교 드 골 장군은 상대가 먼저 움직이길 기다리는 이 작전을 비판했다. 그는 탱크를 이용해 선제공격하자고 주장했다. 프랑스에선 매달 300대의 탱크가 생산됐고, 보병대를 지원하기 위해 전 전선에 걸쳐 흩어져 출동했다. 화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설상가상 항공기 생산도 속도가 나지 않았다. 프랑스는 미국에 항공기 4,000대를 주문했는데, 당시 미국은 고립주의 성향이 점차 커지고 있었다. 영국,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 전쟁을 중단하라는 여론이 들끓었다. 하지만 영국 정부의 수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윈스턴 처칠. 그는 전쟁을 중단할 생각이 없었다.

소련에 침략당한 핀란드를 돕기 위해 영국-프랑스 원정대가 소집됐다. 프랑스는 최정예 병사들인 외인부대를 전쟁터로 보낼 준비를 했다. 과거 100년간 외인부대는 전 세계의 불량배를 모두 받아들였다. 너무 수상하지만 않으면 과거사는 상관하지 않았다. 지원군이 파견되는 사이 핀란드와 소련은 평화 조약에 서명했다. 며칠 후 히틀러는 신속하게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공격했다. 히틀러는 철의 노선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독일군에게 철은 필수였고, 총사용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스웨덴 철광석은 노르웨이의 나르비크 항에서 선적돼 독일로 옮겨졌다.

영국-프랑스 원정대가 철의 노선을 막기 위해 나르비크에 상륙했다. 그들은 한 달 만에 점령에 성공했고, 철의 노선은 일시적으로 끊어졌다. 이 승리로 프랑스군은 잠시 사기가 올랐지만, 그들은 곧바로 나르비크를 떠났다. 독일이 서유럽 공격을 개시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군은 이 공격을 막기 위해 다시 배에 올랐고, 스웨덴의 철광석은 전쟁 내내 독일의 전쟁 장비를 만드는 데 쓰였다.

1940년 5월 9일, 히틀러는 베를린을 떠나 프랑스 국경 근처에 있는 새 본부로 자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발표했다.

"제군들, 이제 공격이 시작됐다."

장군들은 1914년 때처럼 벨기에를 지나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그는 바로 아르덴 숲을 관통해 북해 쪽으로 치고 올라가자는 만슈타인 장군의 생각을 지지했다. 다른 장군들은 연합군이 후방에서 쳐들어올 것을 두려워했지만 히틀러는 자신에 찼다. 독일군은 조국이 위험에 처했다고 생각했다.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것은 프랑스였기 때문이었다.

1940년 5월 10일 새벽, 독일의 낙하산 부대가 네덜란드에 뛰어들었다. 그들의 임무는 노트르담 근처의 다리와 비행장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히틀러는 연합군을 속이기 위해 탱크를 벨기에로 보냈다. 던져진 주사위. 기다리는 히틀러. 과연 연합군은 그의 함정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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